2011/03/15 00:56

꺼냄 수행


나는 그를 즐겁게 해주지 못했다. '선물'을 주지도 못했다. 노래를 불러주거나, 위트를 날리거나, 수려한 외모를 선사하지도 못했다. 그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지도 못했다. 다만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랬을뿐이다. 그런데 왜 그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

나는 목숨을 내놓은 적이 없다. 내 삶의 무언가를 희생한 적이 없다. 그저 몇 번 머릿수를 채웠고, 몇 번 찬바람을 맞았고, 그게 전부다. 교활한 무리들을 있는 힘껏 마음속으로 욕한 게 전부다. 더러 말로, 글로 내뱉은 게 전부다. 그런데 감히 그들이 승리하길 바라는가.

나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물욕을 버리지도 않았다. 한철, 한달, 하루도 여법하고 날카롭게 수행한 적이 없다. 단지 가끔 궁리하고, 이따금씩 가부좌를 틀고 앉을 뿐이다. 남들이 티비를 보거나 한담을 하는 그 시간에, 꼭 그 만큼만. 이런 내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비겁하다. 나의 사랑도, 신념도, 믿음도 비겁하다. 나는 머리속에서 사랑을 하고, 머리속에서 싸움을 하고, 머리속에서 수행을 하고, 그리고는 온몸으로 괴로워한다. 가여운 인간.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을 꿈꾼다. 내 존재가 완전함을 망친다면, 나는 내 존재를 지운다. 내 머릿속의 그는 완전히 선하고 행복하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은 헌신적이고 용감한 투사들이다. 투쟁은 아름답다. 진리는 고결하다. 진리는 대중들을 비추고 대중들은 진리로부터 평안을 얻는다.

내가 꺼낸다면, 나를 꺼낸다면, 그와 그들, 그것은 완전할 수 없을 게다. 그는 진실한 사랑을 외면하는 매정한 여인이 될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간에 줄을 서고, 또 세우면서 자신들을 과시하고 내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진리는 소박하기 그지없어, 대중들을 비추지도, 평안에 들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그들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진리를 배반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완전하더라도, 때로 추하고, 보잘 것 없더라도 그것이 인간이고, 삶이며, 역사다. 그리고 그것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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